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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신륵사에 보물 '가득'
2010년 10월 22일 (금) 15:39:30 이영일 기자 man201f@korea.com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 천송리, 남한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는 봉미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 신륵사는 고려 우왕2년(1376)에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한 절이 됐다.

천년고찰의 절인 신륵사는 강가에 위치해 ‘벽절’이라고 불리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다층석탑, 다층전탑, 보제존자석종, 보제존자석종비, 대장각기비, 보제존자석등, 조사당이 있고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극락보전, 팔각원형석조부도가 있다. 

신륵사 최고의 감동은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와 시원하고 상쾌한 공기를 벗하며 천천히 걷는 맛이 아닐까 싶다. 신륵사의 주요 볼거리를 소개한다.

   
신륵사 청자정(靑磁亭)

신륵사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약100m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여정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하는데 제격이다. 다섯 갈래 물줄기에서 쫄쫄쫄 떨어지는 맑은 물은 마음속의 지저분함을 깨끗이 씻어주는 듯 시원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신륵사 보호수
청자정 옆으로 600년된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가 22m이고 나무둘레는 3.1m~ 2.7m에 이른다. 1982년 10월 15일 여주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로, 가을에는 노란색 잎으로 관광객들에게 이로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포토존으로 적당하다.

   
신륵사 강원헌(江月軒)

6각형의 정자로 가파른 넓은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며 주변의 뛰어난 경치가 압권이다. 벽절로 불리는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려말이 고승 혜근(1320~1376)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이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혜근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江月軒)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본래의 누각은 혜근의 다비를 기념해 세운 3층석탑과 거의 붙어 있었으나 1972년 대홍수로 옛건물이 떠내려 가자 1974년 3층석탑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철근과 콘크리트를 사용해 다시 지었다.

신륵사 삼층석탑(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3호)
이 탑은 화강암을 깎아 만든 3층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여주 신륵사 경내 강변 암반(강월헌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탑을 지탱하고 있는 제일 아랫부분인 기단부는 한 장의 넓적한 돌 위에 사각형의 석재를 올려놓고 그 위에 덮개에 해당하는 상대석을 덮었다.

기단부 바로 위에 놓여 있는 탑신에 해당하는 돌의 네 모퉁이에는 기둥모양이 조각돼 있으나, 마모가 심해 알아보기 힘들다. 그 위에 목조건축물의 지붕과 같은 형태로 옥개석을 덮었다. 옥개석은 기울기가 비교적 완만한 편이고, 옥개석 아랫부분에 새겨진 받침은 3단 내지 4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형태로 3층의 탑신과 옥개석이 쌓여 있으나, 현재 3층 탑신석은 결실된 상태이다. 탑의 맨 꼭대기를 장식하는 구조물인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다. 이 탑은 조각이 부드럽고 탑신부의 짜임새가 간결해 고려후기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신륵사 다층전탑(보물 제225호)
이 탑은 우리나라에서 남아 있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전탑으로 높이는 9.4m이다. 이 탑의 기단부는 화강암을 사용해 7단의 층단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탑신부는 여러 단의 벽돌을 쌓아서 만들었는데 몸돌에 비해 지붕들은 매우 간략하게 처리돼 있다.

탑을 구성하고 있는 벽돌에는 이중의 반원 사이에 연주문(連珠紋)과 당초문(唐草紋)을 조각했으나 배치가 일정하지 못하며, 신라시대의 전탑이 거의 간격을 두지 않고 벽돌을 쌓은데 비해 이 전탑은 벽돌 사이를 띄워 그 사이에 면토(面土)를 발랐다.

상륜부는 전으로 만든 노반 위에 화강암으로 만든 복발, 보개, 보주 등이 얹혀있다. 이 탑의 건립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벽돌의 문양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많은데, 탑 북쪽에 있는 수리비 내용에 의해 조선 영조2년(1726)에 고쳐 지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신륵사 대장각 기비(보물 제230호)
이 비는 신륵사 대장각을 세운 내력을 새긴 것이다. 목은 이색(李穡)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보제존자 나옹(懶翁)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해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해 이곳에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문은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인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기둥을 댄 다음 그 위에 지붕모양의 개석(蓋石)을 올렸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말기에 나타난 것으로 조선시대 초기의 비(碑)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신륵사 극락보전

절의 중앙에 있는 법당인 극락보전은 정면3칸, 측면2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전면의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부재인 공포의 쇠서 끝에 연봉이 장식돼 있으나 후면 공포의 쇠서는 연봉이 없는 단순한 형태로 전면의 잔업에 치중하는 수법을 보이고 있다.

내부 중앙에는 불단위에 중생을 위해 자비를 베푼다는 아미타삼존불이 봉안돼 있다. 현재 신륵사 극락보전은 해체보수공사가 진행 중이며 극락보전 전체를 해체 후 재설치 된다. 도편수에는 이광복(대목 제2236호), 와공에는 박광희(와공 제1269호), 미장공에는 유한철(미장공 제2371호) 장인이 참여하고 있다. 

   
신륵사 다층석탑

이 탑은 우리나라에 있는 대부분의 석탑이 화강암으로 만들어진데 비해 특이하게도 흰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 높이는 3m에 이른다. 이 탑은 기단에서 몸돌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하나의 돌로 조립됐다. 사각형의 지대석위에 2층 기단을 놓았다.

하층기단의 하대석에는 연꽃문양이, 모서리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각층의 줄어드는 비율이 완만하다. 지붕돌의 추녀는 수평으로 흐르다가 전각에 이르러 반전을 보인다. 팔층 지붕돌 위에 작은 탑몸돌이 있는 것으로 보아 원래 더 많은 층수를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륵사 조사당
신륵사의 조사당은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중앙에 지공, 좌우에 무학과 나옹의 영정이 있다. 정면1칸, 측면2칸 규모로 장대석 기단에 다듬은 초석을 놓아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되는 재료인 공포를 사용한 다포계 건물이다.

지붕가구는 오량으로 구성하였는데 대들보 위에 가로재가 정(井)자 형으로 놓이고 그 위에 기둥을 세워 마루도리를 받도록 했으며 뒷벽 쪽으로 불단을 설치해 무학, 지공, 나옹의 영정을 봉안했다.

신륵사 조사당은 작은 규모지만 공포의 형태와 가구수법이 특이하고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외곽을 가지고 있는 조선초기의 중요한 건축으로서 보물 제180호로 지정돼 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이 석종은 신륵사에서 세상을 떠난 고려말기의 승려 나옹(1320~1376)의 사리를 모신 종모양의 부도(浮屠)다. 

부도의 기단위에 돌을 깔고 기단의 앞면과 양쪽면에 2단의 계단을 설치했는데 계단에 문양을 새겨 변화를 주고 있다. 구 위에 모셔진 이 석종의 모양은 원만한 타원형을 이루다가 어깨부분에서 수평이 됐으며 맨 꼭대기에는 보주(寶珠)를 조각했다. 

부도 뒤편에 있는 보제존자 석종비(보물 제229호)의 내용에 의해 이 석종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 우왕5년(1379)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보물 제228호로 지정돼 있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 전석등
나옹선사의 묘탑앞을 장식한 회색의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석등은 양련과 복련을 새긴 기단위에 팔각의 화사석을 갖고 있는 석등이다. 화사석의 높이는 67cm, 지산전체의 높이는 193cm이며 보물제231호다.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
보물 제229호로 지정돼 있는 이 비는 고려말의 승려 보제존자 나옹의 묘탑과 영정을 모신 진당(眞堂)을 조성한 내력을 적은 비다. 

비문은 이색(李穡)과 서예가인 한수(韓脩)가 짓고 썼는데 단정한 필체가 돋보인다. 뒷면에는 건립에 참여한 제자와 지주자의 명단, 중창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있다. 비는 2단의 지대석 위에 연꽃무늬를 새긴 비좌를 얹어 비목을 세웠으며 비목 양옆에 기둥을 세운 뒤 그 위에 지붕모양으로 된 개석을 얹었다. 

신륵사 팔각원당형석조부도
이 부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통일신라시대부터 유행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이어받고 있다. 재질은 화강석이고 전체높이는 225cm이다. 원래 조사당 뒤 북쪽 구릉 너머에서 1966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부도란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탑을 의미한다. 이 부도는 팔각의 집모양을 받치는 3단형의 기단부(基壇部)와 팔각 집모양의 탑신부(塔身部)로 구성되어 있다. 기단부는 하대석(下臺石), 중대석(中臺石), 상대석(上臺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대석(地臺石)과 일조로 구성된 팔각의 하대석에는 8개의 연꽃잎 무늬가 돋을새김되어 있고, 매우 낮은 원통형의 중대석은 문양이 없으며, 팔각의 상대석은 위로 향한 연꽃잎 무늬가 돌을 새김해 놓았다. 탑신부는 탑신석(塔身石)과 옥개석(屋蓋石)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도는 고려말에서 조선초 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95호로 지정돼 있다.

신륵사 원구형석조부도
이 부도는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만든 것인데, 탑의 형태가 둥근 공모양을 하고 있어 원구형부도라고 불리운다. 크기는 전체높이가 220cm이고, 공모양의 탑신은 60cm로 당시 조성되었던 부도들과 비슷하다.

이 부도는 크게 위부터 상륜부와 옥개석이 하나의 돌로, 그리고 원형모양의 탑신이 하나의 돌, 그리고 기단부는 세 개의 돌로 쌓았다. 아래쪽의 기단부는 일반적으로 사각형의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석으로 되어 있는데, 이 부도는 하대석이 결실되어 있다.

연꽃잎으로 장식된 상대석과 팔각의 돌 위에 각 모서를 작은 원형의 연주문(聯珠文)으로 장식한 중대석, 그리고 사각형의 지대석만 남아 있다. 상륜부는 연주문을 받침으로 한 세층의 보주형으로 장식했으며, 탑신 위에 옥개석 부분은 기와골을 선명하게 표현하고, 벌갈아 가며 용머리를 새기는 등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 부도는 하대석이 결실된 것 이외에는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당시의 세밀하고 아름다운 문양이 조각되어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할 수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4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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