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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지역화폐 양평통보 도입 600년전 ‘조선통보’ 발행한 양평주전소 [기묘한 인연]
고려말 철장설치 18세기까지 전쟁철환 생산 / 조선조 세종때 주전소 설치 조선통보 제작
2019년 05월 08일 (수) 17:53:15 양평군 박현일 man201f@korea.com
   
▲ 양평군의회 박현일 의원.

한반도에서 철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B.C 3세기 말∼B.C 2세기 초로 알려져 있다.

대륙에서 철기문화가 전래되면서 성읍국가(城邑國家)가 형태의 정치세력 집단이 점차 교환이나 외부의 적에 대한 공동방어를 목적으로 ‘연맹체’를 이루었으며, 이것이 ‘소국’으로 발전되어 하나의 국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양평을 비롯한 한강유역에는 지금으로부터 2300년 전인 B.C 4세기경 성읍국가 형태의 진국(辰國)이 성립되어 중국까지 널리 알려졌으나 B.C 2세기 말 위만조선과 중국 한(漢)나라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자 위만조선 유민집단에 진국으로 대거 유입하면서 철기문화를 중심으로 한강유역에는 마한연맹체에 속한 10여 개의 ‘소국’이 성립됐다.

이때 양평에는 일화국(日華國)이 존재했으며, 이후 하남위례성을 거점으로 한 백제에 편입된다. 그런데 한반도 최초의 철기유적이 양서면 대심리 주거유적에서 발견되어 양평이 철의 주산지였음을 입증해 주고 있다.

양평과 인근 가평읍 마장리에서 발견된 철기유적은 철 주산지로써 한강유역의 최초 국가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양평에 철을 생산·가공한 역사기록은 없을까? 문헌상에 최초로 확인되는 것은 고려 말 정부가 필요로 하는 ‘탄환’을 만들기 위해 설치한 철장(鐵場)이다.

고려사(권56, 지10, 지리1)에 공양왕 3년(1391)에 지평현 경계에 철장을 설치하고 감무를 배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세종실록지리지(권148, 지평현편)에는 ‘지평현에 철이 많지 않으므로 철장을 폐쇄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철의 주산지 혹은 무기제련소로서 역할과 기능은 이후 다시 부여된다. 조선 초기인 문종 실록(권3, 원년9월19일)에 보면 조선 중기 이후에는 무기제조소이자 철의 산지로서 중앙정부가 양근지역을 크게 의식하게 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인한 피해가 극심했던 1601년(선조 34년)에 도체찰사 한음 이덕형은 ‘양근에 주조해 놓은 여러 가지 철환(포탄)이 수십만개가 있는데 차차 수송해서 긴급한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소서’하면서 국가방위의 중요성을 상기시키고 있다.(선조실록 권135, 34년3월18일)

양근ㆍ지평일대가 철의 산지이자 철환이 제조됐던 장소였음은 18세기 이후에도 확인된다. 즉 1716년(숙종 42)에 민진형이 말하기를 ‘무기 공급이 매우 어렵습니다. 지평의 둔전 안에도 철 맥이 있으니…’ 라는 기록이 숙종실록(권58, 42년 12월1일)에 보인다.

양평에서 철이 생산된 곳은 어디였을까.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옛 지평지역인 지제면 옥현2리 갈골이라고 하며, 지금도 철 찌꺼기가 발견되고 있다.

현재 지제면 옥현2리 19번지 일원에서 확인된 야철지는 옥현리 광양마을 서낭당 골짜기에 형성된 계단식 경작지 중간부분으로 해발 396m의 배미산 남쪽 산록으로 철재가 수북히 쌓여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 병기창이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한 곳은 옥현리 산 28번지 야산으로 광양저수지 남쪽에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망미리쪽으로 넘어가는 옛길 고갯마루 못 미쳐서 소나무 숲 가운데 철재무더기가 쌓여 있다. 주민들은 이곳에 조선시대 주전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양평지역 철기유적은 철기시대부터 최소한 조선 숙종(1716)때까지 2000년 이상 지속된 야철 유적인 만큼 역사적인 사료가치와 보전이 절실하다는 각계의 지적이다. 분명한 것은 철기시대이후 18세기까지 약 2000년동안 양평지역이 한반도 철 주산지였으며, 무기 제작소 이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19일 양평군은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의 소득 증대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양평통보를 발행했다. 양평통보가 발행되기 600년 전 조선시대 초기 조선통보가 양근지방에서 발행됐다면 역사의 기이한 인연인가?

양평에 중앙정부의 화폐를 제작했던 주전소(엽전제작소)가 설치시기는 분명치 않으나 조선전기 이전부터 가동 중이었음은 확실하다. 조선시대에 동전을 주조하기 위해 중앙의 관련 부서 또는 지방의 감영등에 임시로 설치한 관청이 주전소(鑄錢所)이다.

그러나 상설 관청이 아니고 수시로 설치, 폐지됐고 그 연혁이나 직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세종 초 경기도 양근에 주전소를 설치, 조선통보를 제작했으나 원재료와 주전 인력의 확보가 어려워 나중에 폐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양평읍 옥천면 용천3리 편전마을로 추정된다. 원재료인 구리와 철 공급이 원할치 않아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1442년(세종6) 당시 ‘양근군에 일찍이 주전소를 설치하고 대호군을 시켜 감독하게 하였다’라는 세종실록(6권 23·6년 2월 26일)기록이 있다. 세종실록 기록에는 주전소 규모도 예측할 수 있다.

‘양근 분서에는 주전하는 공인이 30명이나 이제 30명을 더 보강하고, 조역하는 사람도 더 늘려야 하며… 나무와 숲이 많은 곳에 대장간 50곳을 설치하여 공인 50명과 조역 100명을 주고, 감독하는 관원을 보강 배치토록 할 것이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양근군이 중앙과의 거리상의 이유 때문인지 주전소에 소속된 인원이 적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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